Tiny Hand DEEZ

 끝까지 읽은 뒤에도 내가 뭘 읽었는지 제대로 모르겠던 소설이었다. 요조라는 인물이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인간에 공포를 느껴 자꾸만 스스로 우울에 잠식하고 타락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냥 머리로만 대강 알겠고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상당히 외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토록 뼛속까지 끔찍하게 내향적인 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글의 호흡도 내 이해도 하락에 한 몫 했다. 한 문장이 너무나 길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놓쳤다.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작가가 자살했다는 점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하나, 내게는 어느 부분이 그렇게 훌륭한 것인지 별로 와닿지 않은 소설이었다.




[문장 옮기기]


 잊을 만하면 괴조가 날아와서 기억의 상처를 부리로 쪼아 터뜨립니다. 금방 예전의 죄와 부끄러운 기억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면서 왁! 하고 소리치게 될 것 같은 공포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때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발명한 놀이로, 명사에는 모두 남성 명사, 여성 명사, 중성 명사 등의 구별이 있는데 그렇다면 희극 명사, 비극 명사의 구별도 있어야 마땅하다. 예컨대 증기선과 기차는 둘 다 비극 명사고 전철과 버스는 둘 다 희극 명사다. 왜 그런지를 이해 못하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희극에 하나라도 비극 명사를 삽입하는 극작가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낙제. 비극의 경우도 똑같다는 논법입니다.



 그 당시 저는 그 비슷한 유희를 도 하나 발명했습니다. 그것은 반의어 맞히기였습니다. 검정의 반의어는 하양. 그러나 하양의 반의어는 빨강. 빨강의 반의어는 검정.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