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뫼르소는 무감정의, 되도 않는 것에 고집을 부리는, 정말 쓸데없이 진실만을 말하려고 하는, 융통성 제로의 인물이다. 뫼르소가 사람을 죽였는데, 앞에 말한 성격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해 결국 사형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이 이 책에 담긴 철학과 어쩌구 저쩌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떠들어대는데 난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나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말하지만 뫼르소는 심각하게 이성적이고 무신경한 사람이다. 억지로라도 감정을 좀 꾸며낼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까지 굳이 이성적인 말만을 골라서 한다. 감정이라는 걸 안 가진 사람. 친구 중에 이런 애가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대하기가 쉬우면서도 나랑은 잘 맞지가 않았다. 당최 나한테 공감이라는 걸 못 해주니까. 결국 지금은 연락을 끊었다.


 자신의 재판인데도 저렇게 무감각한 태도라니 소름이 끼친다. 정말로 사형을 선고받을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더위만을 느끼며 그냥 빨리 감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제대로 미친 놈. 뭐 이방인을 '철학적'으로 읽는 '문학도'들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 뫼르소는 그냥 미친 놈이다.


 덕분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볼 수 있었다.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는지. 근데 아무도 모르지 그건.




[문장 옮기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그때 갑자기 가로등이 켜지며, 어둠 속에 떠오르던 첫 별빛들이 희미해졌다. 그처럼 온갖 사람들과 빛이 가득한 보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눈이 피로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로등은 젖은 보도를 비추고, 전차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빛나는 머리털, 웃음을 띤 얼골, 혹은 은팔찌 위에 불빛을 던지는 것이었다. 조금 뒤에 전차들이 점점 뜸해지고, 벌써 캄캄해진 밤이 나무들과 가로등 위에 내려앉으면서 거리는 어느 틈엔가 인기척이 없어지고, 마침내 다시 쓸쓸해진 길을 고양이가 천천히 가로질러 가는 시각이 되었다. 그때에야 나는 저녁을 먹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단 하루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감옥에서 백 년쯤은 쉽사리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을 자고, 지나간 일을 되새기고, 신문 기사를 읽는 동안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감옥에 있으면 시간관념을 잃어버린다고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읽었을 당시에는 내게 별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한나절이 얼마나 길면서 짧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냥 지내기에도 길지만, 너무 길게 늘어져서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치고 결국 서로 뒤섞여버렸다. 흘러가는 시간은 이제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어제 또는 내일이라는 말만이 의미 있을 뿐이었다.



 공판이 끝났다. 법원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면서 나는 아주 짧게나마 여름날 저녁의 냄새와 색깔을 느꼈다. 어두컴컴한 호송차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도시의, 내가 행복을 느끼던 어떤 시간의 귀에 익은 모든 소리들을 지친 마음속에서 끄집어내듯 하나씩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나른해진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문팔이들의 외침, 공원에서 들려오는 마지막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의 신호, 고지대의 휘어진 길목에서 울리는 전차의 경적, 그리고 항구에 밤이 내려앉기 전 울리는 하늘의 웅성거림. 이 모든 것들은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익히 알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눈먼 이가 길을 더듬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오래전, 내가 행복을 느끼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꿈도 없는 가벼운 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언가 달라졌다. 왜냐하면 내일을 기다리는 동시에 지금 내가 만나게 되는 것은 나의 감방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나를 순진한 잠으로 이끌 수도 있고, 또한 감옥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