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습지에 버려진 아이의 성장기를 그려낸 소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한 과학자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출간한 작품이다. 습지를 묘사하는 문장이 그토록 섬세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가 직접 보고 겪은 자연을 애정을 담아 글로 풀어냈기 때문이리라.

 

 가족이 하나 둘 떠나버리고 집에 남은 카야가, 글 읽기도 셈도 요리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인 카야가, 술만 먹으면 미친 놈이 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되었을 때 '이 일을 어쩌면 좋을꼬'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카야는 점핑과 메이블을 만나 알게 모르게 보호를 받았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단단해졌고, 테이트에게 배우고 또 배우며 학교에 가지 않고도 스스로 성장했다. 후엔 아버지마저 떠나 홀로 살게 되었지만 테이트와 함께라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테이트가 카야를 떠나겠다는 선택을 한 건 나도 좀 충격적이었다. 믿고 있던 캐릭터였는데 어떻게 네가. 카야는 다시 끔찍하게 외로워졌고 시간이 흘러 체이스를 만났다. 체이스 이 나쁜 새끼... 이 새끼에게 카야는 그저 흥밋거리일 뿐이었나 보다. 이 못된 놈을 만나는 동안의 카야가 너무 불쌍했다. 외로움 때문에 빈 깡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줄도 모르고 귀 닫고 있었던 카야. 결국은 그와 멀어졌지.

 

 테이트는 뒤늦은 후회를 하고 야생 소녀에게 돌아왔지만 카야의 반응은 냉랭했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테이트가 떠났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렸을 테니까. 테이트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테니까. 하지만 테이트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카야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도 물어다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1969년의 체이스 살인사건과 이야기가 교차했다. 야생에서 자란 카야는 감방 속에서 인간들에게 마음의 문을 더욱 더 세게 닫아버렸다. 결국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사람에게 너무 시달린 카야는 오빠 조디에게까지 화를 내버리고 만다. 하지만 테이트의 사랑을 천천히 다시 깨달은 카야는 테이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조디의 가족과 왕래하며, 습지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고, 인정 받고, 자유롭게 살다가 예순이 넘는 나이에 고요히 죽는다.

 

 그리고 그 후 테이트가 발견한 시 한 편에서의 마지막 한 방.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여기에 어떠한 윤리적 잣대도 들이밀 수가 없었다. 나도 카야의 비밀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조용히 묻어가고 싶다. 카야가 다음 생엔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렇게 도톰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린 것도 참 오랜만이다. 계절학기가 끝나고 할 일이 딱히 없기도 했고, 그냥 이 소설 자체가 굉장히 담백하게 흡입력이 있었다. 이야기를 딱히 꼬지 않으면서도 단순하고 탄탄한 전개로 재미를 불러왔다. 장르도 여러 개가 섞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우러졌다. 인간관계에 지쳐 외로운 어느 날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속 습지의 소녀 카야가 생각날 것 같다. 무거운 마음 위로, 잔잔하게.


[문장 옮기기]

 

 카야는 문득 벌떡 일어나 앉아 주의를 집중했다. 암컷 한 마리가 암호를 변경했다. 처음에는 올바른 줄과 점의 조합을 반짝거리며 자기 종의 수컷을 끌어들여 짝짓기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다른 신호를 반짝거렸고, 그러자 다른 종의 수컷이 날아왔다. 그 암컷의 메시지를 읽은 두 번째 수컷은 짝짓기 의사가 있는 자기 종의 암컷을 찾았다고 확신하고 암컷의 머리 위에서 체공했다. 하지만 별안간 그 암컷 반딧불이 다리를 뻗더니 입으로 수컷을 물어 잡아먹었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발아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 됐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캐서린 클라크, 체이스 앤드루스의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귀하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카야는 나머지를 듣지 않았다. 아무도 나머지는 듣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