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이 소설이 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지 의아하다. 창비 출판사의 다른 책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성장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손톱만큼의 흥미도 끌지 못한다거나 아주 형편이 없었던 건 아니다. 보통의 인간과는 거리가 먼 특징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플롯에 대한 몰입도를 자연스럽게 상승시켰다. 하지만 특색은 그뿐이었으며, 내용이 너무 단조롭고 결말은 역시 뻔할 뻔 자였다. 킬링타임용, 약간의 감동을 얻고 싶은 용도로는 괜찮겠으나 성인이 읽기에는 상당히 유치한 청소년 문학이었다.

 

 스포일러를 포함한 줄거리 설명이니 여기서부터는 책을 본 사람만 읽기를 바란다. 소설의 주인공인 윤재는 남들보다 훨씬 작은 편도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윤재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윤재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돌아다녀 보고 윤재에게 편도체 모양을 쏙 빼닮은 아몬드를 수도 없이 많이 먹여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낙담하고 지쳐버린 어머니는 마지막 수단으로 연을 끊고 지내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SOS를 청해 윤재, 어머니, 할머니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살게 된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윤재에게 감정을 가르치기 위해 말로, 단어로 주입식 교육을 하며 무던히 노력한 끝에, 윤재는 다행히 크게 튀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윤재가 17살이 되던 해 생일, 어머니와 할머니가 웬 미친놈에게 칼을 맞는 비극이 일어났다. 할머니는 죽고 어머니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버렸지만, 윤재는 슬픔과 분노를 느낄 수도,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없었다. 그저 '왜'라는 물음만이 머릿속에 떠다닐 뿐이었다.

 

 혼자 살게 된 윤재는 심박사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가 하시던 헌책방을 이어서 운영한다. 하지만 더이상 새로운 감정을 배울 수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처할 능력도 없던 윤재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힌다. 그러던 중 윤 교수의 부탁으로 윤 교수의 아내가 죽기 직전에 그 사람의 아들인 척 연기를 했고, 실제 윤 교수 아들인 곤이가 같은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

 

 곤이는 어릴 적 윤 교수 부부가 잃어버린 아들이었다. 소년원을 드나들며 말썽을 피우다가 뒤늦게 친부모를 만나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곤이는 윤 교수가 원했던 올곧은 아이가 아니었고, 곤이를 잃은 후부터 피폐해져 간,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아내에게 보여줄 아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곤이는 전학 오자마자 아이들을 건드렸고, 그중 힘들어하지도 별다른 반응도 없는 윤재를 자극하려고 때리며 난동을 피웠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 윤재는 곤이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곤이는 윤재의 병을 알게 된 후부터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 윤재의 헌책방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둘은 친구가 되었다. 윤재는 곤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가족을 망가뜨린 그 살인마가 왜 그랬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센 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곤이를 만나고, 도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윤재의 감정에 자그마한 동요가 생겼다. 그리고 더 강해지겠다며 폭력배의 밑으로 들어간 곤이를 윤재가 구해내면서 처음으로 감정이란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다. 극적으로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어머니를 보고 윤재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작가의 충분한 인물 묘사에도 불구하고 윤재가 할머니의 죽음을 보고만 있었을 때 난 윤재에게 혐오감을 느꼈었다. 가족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가 있나 싶었다. 이러는 나도 공감 능력의 결여인가? 대게 경험에 의존한 감정만을 느끼며 살아왔던 나라서 편도체 자체가 작은 공감 불능의 윤재에게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윤재가 감정을 깨닫는 장면까지는 극적인 연출과 결말을 위해 그러려니 했지만, 윤재의 어머니가 의식을 회복하고 돌아온 인위적인 감동 포인트에서는 산통이 와장창 깨졌다. 딱 그전까지만 했으면 더 괜찮았을 것 같다.


[문장 옮기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윤 교수는 곤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까? 그랬더라면 그들 부부는 그 애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다. 아줌마는 죄책감에 병이 걸리지도 않았을 거고, 회한 속에 죽지도 않았을 거다. 곤이가 저지른 골치 아픈 짓들도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톡. 내 얼굴 위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뜨겁다. 델 만큼.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뭔가가 탁, 하고 터졌다. 이상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아니, 밀려드는 게 아니라 밀려 나갔다. 몸속 어딘가에 존재하던 둑이 터졌다. 울컥. 내 안의 무언가가 여원히 부서졌다.

 ─느껴져.

 내가 속삭였다. 그것의 이름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외로움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두려움이었는지 환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다. 구역질이 났다. 떨쳐 내고 싶은 역겨움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멋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