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2015.01.11 오만과 편견


 시작 전부터 무슨 내용일까 참 궁금했었다. '오만과 편견'이라니 뭔가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도 같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운 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내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어떤 귀족 남자와 그에게 상당한 편견을 가진 한 여자의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작가는 이 둘의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생긴 오해와 그들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아주 재치있고 미묘하게 풍자하여, 독자로 하여금 재미와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통해서는 오만한 행동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갖는 편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깨닫게 하고, 제인과 빙리에게선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우유부단함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또한 샬럿의 경우에서는 당대에 흔히 일어났던 '재산만을 고려한 결혼'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베넷 부인이나 리디아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정도의 무지함은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다가도 혹시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저렇게 무지하게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 콜린스나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 빙리 양과 허스트 부인 등 허영심이 가득한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로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여러 부류의 눈에 띄는 인물 설정을 통해 참 여러가지를 새삼 알고 느끼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어려운 책일 거라는 생각'이 곧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내가 일상 생활에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며 앞으론 특별히 신경 쓰고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5.01.22 태평천하


 이 소설을 읽으며 참 많이 웃었다. 그와 동시에 일제 강점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마냥 옛날 말 많이 나오는 소설이겠거니, 교훈 하나 달랑 던져주는 책이겠거니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끝에 다다라서는 참 괜찮은 풍자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가 과연 태평천하였을까? 여러 군데 섞여있는 반어적 표현들을 찾아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 참, 한 가지 덧붙이자면 책 속에 인물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중간에 조금 헷갈렸다. 가계도를 그리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




2015.02.26 개밥바라기별


 2년 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를 푸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나온 적이 있었다. 시청률이 낮아 두 달도 채 못 가서 폐지되었지만, 활자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내게 '독서'에 관한 인식을 처음으로 심어주었던 프로그램이었다. 부끄럽게도 당시의 나는 글을 읽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학생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나는 읽어보지 못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책 속의 구절과 문장들에 대해 서로 공감하며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주제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웃고, 아는 체하고, 말하는구나. 저들이 일부러 나를 따돌리는 것도 아닌데 그때의 난 내 존재의 유무조차 모르는 텔레비전 속의 저들에게 일종의 소외감을 느꼈었다. 나도 저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그래서 이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첫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책을 무작정 사들였다.

 

 나와 '개밥바라기별'은 그렇게 만났다. 난 내가 이 책만 손에 넣으면 술술 읽어버린 후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한 문장 한 문장이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몇 문단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챕터를 이루고 세 챕터쯤 가니까 이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는 거다. 평소에 뭘 좀 읽어봤어야 말이지 필독도서조차 보기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학년 말에 한꺼번에 몰아서 독후감을 쓰곤 했던 내가 겨우 책 한 권을 정독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40페이지쯤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좀 더 흥미롭고 쉬운 짧은 소설부터 시작했다. 조금씩 노력을 했는데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신기하게도 독서가 슬슬 재미있어지고 습관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읽으며 내 생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 2학년 말쯤이었을 것이다. 아직 많이 미흡하고 입맛이 거의 문학쪽으로 취중 되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무언가를 읽으며 지내왔다. 일 년에 100권을 읽는다거나 하는 정도는 물론 아니지만, 하루에 몇 문장이라도 읽었으면 읽었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냥 넘어간 날은 없을 정도로 그저 '꾸준히' 읽었다. 2014년 한 해가 정말로 그랬고, 어제까지도 그랬다. 어제는 '폭풍의 언덕'을 드디어 다 읽고 이제 뭘 볼까 고민하며 책장을 훑어보는데, 문득 내 시선이 '개밥바라기별'에서 멈췄다. 2년 전 읽다 만 이후로 한 번도 손대지 않았는데, 왠지 이제는 읽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개밥바라기별을 집어들었다. 잠들기 전 새벽에 40장 정도 읽고 나서 오늘 이른 아침부터 남구도서관으로 향해 열람실에 틀어박혀 4시간 정도 만에 완독했다. 이게 이렇게 감명 깊고 가슴 뜨거워지는 소설이었던가? 처음 접할 때 쩔쩔맸던 책을 시간이 지나고 똑바로 느낄 수 있게 되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이지 상쾌하고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누가 보면 별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2년 전에 이 책의 글자들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막막함을 기억하고 있기에 짧은 시간 동안 머리가 조금 자라준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한 생각까지 들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는 곳에 이렇게 내 일화를 구구절절 늘어놓아도 되려나... 뭐 어차피 내가 쓰고 나만 보는 글인데 상관없겠지! 개밥바라기별이라는 소설 자체도 훌륭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가슴이 뜨거워지는 소설이었다. 읽으며 황석영 선생님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는데, 이맘때쯤의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강렬하게 전달받았다.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을 놓지 말라는 것. 자유롭게 쫓아가라는 것. 유준의 과감한 일탈과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열망으로부터 나도 많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가슴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난 지금의 어른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제도 따위들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 무슨 생뚱맞은 포부냐고 물어본다면, 개밥바라기별이 아닌 샛별이 되겠다는 나의 어설프지만 확고한 결심을,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잊지 않으려고 해본 소리라고 대답하고 싶다.




2015.05.18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뒤표지나 목차를 훑어보면 활자에서부터 음악회의 기운을 물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서적에 음악회가 웬 말인가 싶지만, 조금만 읽어본다면 과학에 머물지 않고 인문학,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 미학 등 여러 학문의 범주를 넘나들며 한데 어우러져 음악처럼 다가오는 과학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제1악장에서는 케빈 베이컨 게임을 시작으로 여러 흥미로운 글들을 소개한다. 케빈 베이컨 게임이란, 어떤 한 배우와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이 몇 단계 만에 연결되는가를 알아보는 게임이다. 여기에서 영화에 함께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했을 때, 1단계의 사람이 또 다른 사람과 영화를 같이 찍었다면 그 또 다른 사람과 케빈의 관계는 2단계가 된다. 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가지를 뻗으면 3단계가 되고 계속해서 뻗어나갈 수 있다. 이 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기한 사실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배우들이 6단계 이내에서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60억 인구에도 모두 적용된다. 그런데 이때, 개개인은 대부분 자신의 주변 사람들하고만 연결된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아주 결정적인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 아주 소수만이라도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엉뚱한 집단과 연결되어있다면 이 거대한 사회가 몇 단계 만에 누구에게든 도달할 수 있는 작은 세상으로 바뀌어버린다. 나와 영화배우 게리 올드만이 실은 다섯 다리쯤 건너 아는 사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케빈 베이컨 게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이 얼마나 작고 좁은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모순되는 글이 저기 제4악장에 하나 있다. 바로 산타클로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크리스마스 물리학이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이브 단 하룻밤동안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모두 선물을 나누어주려면 지구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31시간 동안 16천만 가정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초에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0.0007초 만에 지붕 근처에 썰매를 주차시키고, 굴뚝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선물을 놓고, 다시 나와 다른 집으로 이동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물리학은 이렇게 산타클로스가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계산을 해보임으로써 아이들의 동심을 깨면서까지 세상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말해준다. 그런데 이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 강조하는 작은 세상 네트워크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저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간관계의 동역학적인 측면에서는 한없이 가까울 수도 있는 곳. 복잡하고 다양한, 모순돼 보이는 여러 주장들이 한데 모여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2악장에서는 프랙털 음악이나 잭슨 폴록의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1/f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1/f 구조를 가진 파레토의 법칙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라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3악장에서는 백화점이 효율적이면서 편리한 진열과 배치를 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수작이라고 말하는 한편 효율적으로 설계된 도로 때문에 사람들이 교통지옥에 시달리고 있다는 둥 모순적인 주장을 펼친다. 4악장에서도 소음의 심리학을 설명하며 요즘 레스토랑은 너무 시끄러워서 귀에다 직접 입을 대고 말해야 겨우 대화가 가능하다는 불만을 털어놓다가도, 금세 소음이 있어야 소리가 들린다는 소음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한 번 더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언젠가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우리 사회를 카오스 시스템으로 보고 불가사의한 자연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카오스 이론은 굉장히 복잡한 패턴들도 몇 개의 변수만으로 이루어진 비선형 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연을 예측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책을 덮은 후 내게 처음 떠오른 생각은 복잡한 현상들을 하나의 이론으로 모아 똑 부러지게 설명하려는 과학은 정말 대단한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과학이 한 발 먼저 나서서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무수히 많은 이론들이 이미 태어났고 매년 새로운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현상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고 그에 맞게 과학은 새로운 이론과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 , 과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서처럼 여러 분야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치곤 했던 머피의 법칙마저 식빵의 버터 바른 면이 늘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의 중력과 식탁의 마찰계수가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 12개의 줄 중 항상 내가 선 줄보다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이유는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이 12분의 11, 내가 선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12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아주 간단한 과학적 근거들을 통해 증명해버린다. 머피의 법칙을 이렇게 간단하게 증명했을 때, 황당하기도 하고 신기했다. 토크쇼 방청객들이 모두 여자인 이유도 이 책을 통해 속 시원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이라고 해서 항상 올바로 판단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O. J. 심슨 살인 사건을 오판한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사건은 확률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확률에 대한 판사의 오해로 인해 살인자를 무죄로 판결하고 세상에 내보낸 것이었다. 어떤 과학 지식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뇌를 15퍼센트밖에 못 쓰고 죽었다.’ 등이 그러한 근거 없는 상식이다. 나도 사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저게 진실인 줄 알았다. ‘과학이라는 탈을 쓴 문장이라 별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에 동감한다. 물론 대부분의 과학이 객관성과 정확성을 가진 신뢰할 만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앞에서 언급한 근거 없는 상식까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크게 흥미를 느꼈던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아프리카 문화에서 프랙털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흑인 스타일의 땋은 머리부터 시작해서 아프리카 부족들의 가옥 배치, 전통적인 조각상들의 모양, 손으로 짠 타일의 무늬까지 아프리카의 문화 곳곳에 프랙털이 숨어 있었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프랙털을 잘 찾아볼 수가 없는데, 유독 아프리카에서는 어딜 가도 프랙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뭔가 야만적이고 원시적이라는 느낌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프랙털이라는 정교하고 수학적인 패턴을 그들이 사용해왔다는 것이 더 믿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자.’,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등등 수없이 많은 교육을 받아왔으면서도 선입견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가 보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없도록 더욱 더 주의해야겠다. 과학 콘서트를 읽으며 새로 알게 된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브라질 땅콩 효과를 선택하겠다. 입자가 서로 다른 모래를 골고루 섞은 후 몇 번의 충격을 가하면 작은 입자는 아래로, 굵은 입자는 위로 올라오는 현상을 대충 알고만 있었지 그것의 정확한 이름이나 개념은 몰랐었는데, 정식 명칭은 브라질 땅콩 효과이며 현상이 일어나는 동안 우리가 보지 못하는 모래의 내부에서는 입자들끼리 대류 효과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읽으며 나의 사고 과정과 판단력, 그리고 상식이 한 뼘 더 성장한 것 같다. 표지의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과학을 통해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2015.07.31 호모 엑스페르투스


 실험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 엑스페르투스.’ 호기심을 좇아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리고 직접 실험하진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이 책의 책장을 연 독자들에게 작가가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테마로 나누어져있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첫 번째 테마 인간의 비밀, 실험으로 풀다’, 자연을 파헤치는 두 번째 테마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라스크, 지구’, 마지막으로 우리의 미래 사회를 시사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서다.’ 이렇게 세 가지의 큰 테마로 분류하여 작가는 그 속에 담긴 많은 실험들을 소개해준다. 먼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유인원 실험과 인간에서는 자의식과 같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오만이 빚어낸 착각이었다는 것을 오랑우탄, 침팬지, 원숭이 등과 같은 유인원 연구를 통해 밝혀낸다. 침팬지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일본의 마카쿠원숭이가 모방 행동을 후손에게 전달하며, 보노보가 인간처럼 애정 표현을 한다는 점이 그 예시이다. ‘페로몬의 화학 통신 물질에서는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의 월경 주기가 동조 현상을 보인다는 논문을 통해 인간에게도 페로몬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바라 매클린톡과 전이 인자는 어떨까? 이 단락에서는 옥수수에서 찾아낸 전이 인자인 DNA 트랜스포존이 인간 유전체의 약 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다른 전이 인자인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인간 유전체의 약 40퍼센트라는 어마어마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는 연구 결과를 알려준다. 이 전이 인자가 인간의 신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제 두 번째 테마로 넘어가보자. 두 번째 테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바이오스피어2’이다. 이는 지구 생물권의 축소 모형을 만들어 외부와 접촉을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족적인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거대한 규모의 실험인데, 예상과는 달리, 실험 시작 후 바이오스피어2 내부의 산소 농도가 21퍼센트에서 15퍼센트 이하로 떨어지고 대기 조성이 밤낮으로 급격히 요동치며 바닷물이 산성으로 변하고 산호가 녹기 시작하여 결과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실험을 통해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생태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산호초를 보호하고 관리할 방법을 제시하는 등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었고, 이후 이 거대한 실험 장치는 다른 대학교로 인계되어 목적은 다르지만 어찌됐든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지능적 물고기의 재발견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친숙한 동물인 개는 식량으로 삼지 않지만, 인간과 진화적으로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물고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 단락에서 소개하는 연구 결과들은 어류가 사람들처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알려진 바와 달리 기억력과 공간파악능력이 꽤 우수하며 나름대로 영리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면서 그 지능에 걸맞은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로 여겨지는 동물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먹이로 삼지 않으려는 경향을 창의적으로 적용한 점이 독특하다. 이제 마지막 테마를 살펴볼까? ‘사이보그 실험과 인류에서는 그저 보철물을 장착하는 수준의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 이후의 존재, 즉 후인간이 나타난다면 생길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히 의족을 착용한 사람이 아닌, 뇌가 컴퓨터와 연결되어 정보가 마음대로 옮겨질 수 있는 수준의 사이보그가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줄기세포 실험들이라는 주제에서도 윤리적 문제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배아 줄기세포를 사용하기 이전에 배아가 인간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유전자와 성 발달 연구에서는 남녀로 구별되는 성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미래에는 다성별 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었던 이유는 단지 제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도 아니고 호모 에렉투스도 아닌, ‘호모 엑스페르투스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실험이 인간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다고 이렇게 거창한 이름까지 만들어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실험과 인간이 그렇게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실험들이 독창적이거나 놀랍지 않다면 호모 엑스페르투스라는 이름을 짓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뭐 얼마나 대단한 실험과 연구를 소개한 책이기에 이런 자신감 넘치는 제목을 갖다 붙였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뭔가 보여줄 테면 보여줘 봐하는 식의 도전적인 마음으로 책을 읽었음에도 책 속의 내용들은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앞 페이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래 살기 위해 장수 유전자를 발견하고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이 재미있는 한편, 꼭 오래 살아야만 보람차게 잘 살다 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노예제를 채택한 개미가 인간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대해 연구한 것도 주의 깊게 읽었다. ‘남자여자를 제외한 다른 성의 개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제3의 성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문장을 봤을 때는 도대체 뭔 소린가 싶어 두세 번 더 읽기도 했다. 자손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 유전자를 전달한다는 수평 유전자 전달 방식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실험들이 존재했다. 세 장짜리 짧은 논문부터 시작해서 며칠을 집중해서 읽어야 끝이 보이는 길고 복잡한 논문까지, 다양한 연구 결과가 널려있었다. 책에 소개된 실험들도 작가가 추리고 추려서 꼭 전달하고 싶은 것들만 모아놓은 것일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이 실험 결과들은 앞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로 전해질 새로운 연구 결과들에 비하면 세 발의 피가 아닐까? 거의 다 했다고, 거의 다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다. 몇 년을 고심하여 알아낸 것들을 정리하여 산더미처럼 쌓아놓아도, 주제를 조금만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 모르는 것투성이다. 인간의 눈엔 항상 물음표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은 정말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매사를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기본으로 깔고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사소한 것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의 외양부터 속에 담긴 원리까지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한다.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보면 디자인이 정말 예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얇게 만들었을까, 얇게 만들면 배터리가 조금밖에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배터리는 어떤 원리로 스마트폰에 전원을 공급하며, 스마트폰은 어떻게 사람의 터치를 인식하는 것일까로 질문이 이어져, ‘스마트폰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상 대화는 연결된 선도 없는데 어디로 전송되는 것일까라는 물음까지 연결된다. 이렇듯 인간의 호기심은 무궁무진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려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순간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혹시 이 호기심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특징짓는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 아닐까?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자세 때문에 인간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상천외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진보의 가능성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뭐든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더 달라질 것도 없고 지금보다 나아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작가가 책 제목을 호모 엑스페르투스라 지은 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바로 호기심이 인간을 여기까지 이끌었고, 성장시켰다. ‘호모 엑스페르투스의 의미를 되새기며 책을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세상의 다양한 과학적 발견들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는 조금 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2015.07.31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학기 초반에 읽으려고 책을 사두었다가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서야 읽게 되었는데, 늦게 읽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시간에 먼저 배웠던 과학자들의 에피소드가 이 책 속에 많이 등장하는데, 이미 들어봤던 이름들이기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고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읽었더라면 좀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새로이 알게 된 과학자가 하나 있는데, 바로 베살리우스이다. 그는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로, 인체의 구조와 작용을 소화, 호흡, 신경을 관장하는 3가지 영의 역할과 작용으로 설명했던 갈레노스의 이론을 부정하며 근대 해부학의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방법을 제공했다. 특히 혈액 순환에서, 갈레노스는 좌심실에서 자연의 영은 생명의 영으로 바뀌고 이것이 동맥을 통해 전달이 된다고 했는데 베살리우스는 해부를 통해 좌심실과 동맥에 혈액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을 지적했으며, 갈레노스의 생각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허파에서 심장으로 오는 허파 정맥에는 허파에서 심장으로 전달되는 공기만 들어 있어야 했는데 해부 결과, 허파 정맥에도 피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는 등 직접적인 해부를 통해 여러 가지 결과를 발표했다. 베살리우스가 이러한 해부에 따른 실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신체에 대해 바로 알게 되는 순간이 몇 백 년은 더 늦춰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갈레노스의 이론에 도전장을 내민 것과 해부를 할 용기를 낸 것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베살리우스가 갈레노스의 이론과 상충되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종교적, 정치적인 탄압을 피하려 배를 타고 거처를 옮겨 다니다가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베살리우스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좀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베살리우스 외에도 내 흥미를 끌었던 과학자들이 몇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패러데이이다.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 현상을 설명했던, 물리시간에 여러 번 들어봤던 과학자였는데,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여느 과학자들처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거나, 처음부터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직업이 대장장이여서 매우 가난해 어려서부터 스스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해야 했다. 신문 배달을 하며 지내다가 13살이 되던 해에 제본소 견습공으로 취직했는데, 그것이 그의 장래에 매우 큰 전환점이 되었다. 제본소에서 일하면서 많은 책을 접하던 패러데이는 화학 이야기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 여러 가지 실험을 했으며 1실링만 내면 들을 수 있는 과학 강연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 강연회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리한 글을 책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제본소를 들락거렸던 왕립연구소 직원인 댄스의 눈에 띄어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 강연 또한 책으로 엮어 데이비에게 선물해 그의 조수가 될 수 있었다. 패러데이는 신분과 학벌의 높은 벽을 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극복하며 본격적인 발견과 발명을 시작했고, 마침내 전자기 유도 현상을 알아냈다. 이는 전자기학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중요한 현상이며, 공업적으로도 발전기나 변압기 등을 비롯하여 많은 전기 기계의 기술적 원리가 되었다. 패러데이는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부를 얻을 수 있었지만, 부와 명예를 철저히 멀리하며 가난한 평민 과학자로서, 귀중한 발견의 결과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난 그의 업적뿐만 아니라 과학을 위한 순수한 그의 마음과, 검소한 생활을 했던 그의 훌륭한 인품에 감동받았다. 항상 겸손하며 진정 자신의 삶을 과학만을 위해 바쳤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서양과학사를 한눈에 훑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과학자들의 진솔한 삶을 파헤쳐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2015.12.13 클래식 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


부모님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려서부터 난 보통 사람들보단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연주회에도 표를 구해 자주 갔고, 집의 진열장에는 아빠가 학창 시절부터 모아오신 클래식 관련 테이프, LP, CD, DVD들이 촘촘히 꽂혀있다. 이렇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조금 생기게 되었고,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아빠가 해주셨던 이런저런 설명 덕분에 음악적 지식도 아주 없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내가 음악을 너무 모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무슨 모순적인 말인가 하면, 물론 평균보다는 조금 더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음악을 가까이 해왔는데 그 시간에 비해 덜 전문적으로 대강만 알아 왔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와 구체적인 개념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쾰른 음대의 교수들과 제자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중요한 질문 101개를 엄선하여, 그에 대해 충실한 답변을 제시한다. 첫 번째 질문부터 참 독특하다. 음악은 언제부터 존재했으며 음악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음악을 움직이는 공기라고 정의한다. 그중에서도 특정한 문화권 내에서만 음악이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첫 기록은 기원전 3세기의 이집트 벽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인간은 말하거나 글을 쓰기 훨씬 이전부터 노래할 수 있었고 물건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이란 무엇일까? ‘클래식이란 단어는 완전하며 조화를 이루고 완벽한 형식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음악사에서는 1730~1830년을 클래식 시대라고 부르는데, 모든 음악 요소의 완벽한 조화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음악의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음고(음높이), 선율, 화성, 리듬, , 템포, 셈여림이 있다. 이때 리듬은 개별 음의 길이, 즉 음표의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음길이를 말하며 박은 음악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강세를 말한다. 템포는 음악의 속도를 정하는데, 악보에서 볼 수 있는 안단테, 알레그로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왜 음악 용어는 대부분 이탈리아어일까? 17세기 말~19세기 초는 음악이 이탈리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성장하는 시기였는데, 이미 그 이전부터 이탈리아는 악보 인쇄와 음악 교육의 선두주자였으며 14세기부터는 유럽 각지의 음악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의 음악 선진국으로 성장했고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순회공연을 통해 세계적으로 더욱 더 널리 알려졌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오페라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으며 이탈리아식 표현과 단어들이 점차 음악 영역으로 뚫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작곡가들은 의사를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모국어로 된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음악에서도 다양한 음악 재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음악에 모국어나 세계의 공통어인 영어를 쓰는 추세로 바뀌게 되었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답을 해주어 기뻤다. 그런데 어떻게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후에도 계속 작곡을 할 수 있었을까? 작곡은 외부의 음향 세계와는 별도로 내면의 귀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선율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베토벤은 비록 청력을 잃기는 했지만 예전에 건강한 귀를 가졌을 때의 경험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작곡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이번엔 악기와 관련된 질문!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 오보에 파트의 수석 주자는 음을 불어주어 오케스트라 전체가 조율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왜 굳이 오보에가 기준이 되는 것일까? 오보에는 겹리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표준음을 불기에 아주 적합한 악기이다. 현악기에 비해 온도나 습도 같은 외부적 요인에 훨씬 덜 민감하며, 음높이가 안정적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오보에의 맑은 소리는 모든 악기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다. 참 쉽고 재미있고 명쾌한 설명들이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부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특이한 질문들까지 딱 101가지의 질문들로 가득 메워져있는 책이었다. 음악은 넘칠 정도로 충분한데 왜 계속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는가, 작곡가는 돈을 많이 벌까, 인간은 누구나 다 음악적일까, 음악가는 음악회가 끝난 뒤에 무엇을 할까, 왜 음악회에서는 마음대로 박수를 치거나 팝콘을 먹으면 안 될까. 이런 물음들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있었을까? 음악의 기초에서부터 음악사, 음악가, 음악회, 오페라, 작곡가, 악기, 오케스트라, 합창단, 그리고 음악 저 너머의 것들까지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작곡가부문에서 국가도 예술음악일까?’라는 질문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Yes입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면서 여러 나라의 국가에 관한 일화들을 소개해주었을 때는 속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라인가? 진지함 그 자체인 이 질문에 순간 라고 대답할 뻔한 나를 정신 차리라고 붙잡기도 했고, ‘지휘자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엔 지휘자가 지휘하는 것 말고는 딱히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많이 없기 때문에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상대음감이 절대음감에 뒤지지 않는 놀라운 능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음악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이 책으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다음엔 동양학에 관련된 서적을 한 권 집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과 즉흥으로 연주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가?’라는 말도 안 되는 물음에조차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연주 기술 이외에 즉석에서 연주할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까지 겸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라고 조곤조곤 답해주는 저자들의 모습에 감동도 받았다. 음악은 영원히 존재할까? 이 질문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클래식에만 국한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정말 건조한 삶을 살아갈 텐데. 아니, 너무 지루하고 감정이 메말라서 다들 미쳐가다가 음악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류 또한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중학교 때 음악실 뒤쪽 게시판에는 이런 문구도 붙어있었다. ‘음악은 유일한 합법적 마약이다!’ 처음엔 이게 뭐야 하며 코웃음 쳤지만, 의미를 새겨볼수록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음악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인도의 음악, 서유럽의 음악, 아프리카의 음악, 혹은 멀리 동떨어진 아마존의 음악은 제각기 서로 다르지만, 이처럼 다른 사회에서 모두 음악이 생겨났다는 것만 해도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음악에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이 있다. 의지와 의견을 표명할 수도, 경고나 반응을 담을 수도, 개인이 경험한 감정과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다. 어머니가 아기를 재우면서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하고, 등굣길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도 하며,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음악은 존재할 것이다. 물론 음악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지금과 10년 전의 음악이 다르듯이 앞으로의 음악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음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101가지 질문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뿐만이 아니라 가요, 팝송, 가끔은 유명한 샹송에 EDM, 클럽 음악까지 아주 많은 것을 듣고 있지만 음악에 대해 이렇게 조금이나마 진지한 생각을 가져보았던 시간이 내 기억으론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의문이 들면 거기에서 그쳤을 뿐 더 파고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이 알찬 질문들로 인해서 음악을 좀 더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유쾌한 기분이다.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재산인 음악. 아직 들어보지 못한, 앞으로 듣게 될 수많은 곡들에 기대되고 설렌다. 세상의 모든 음악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끝까지 자신의 음악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5.12.13 잠의 사생활


 사람들은 모두 잠을 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개미부터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흰긴수염고래까지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다 잠을 잔다. 앞의 이야기가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지만 가끔 잠이 오지 않아 어둠 속에서 혼자 뒤척일 때, 혹은 오히려 잠이 쏟아지는데 잘 수 없는 상황이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을 때 난 잠은 왜 자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종종 들곤 했다. 지금껏 단순히 잠만 잤더라면 딱히 잠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뭐라 적당하게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하고, 가위에 눌려 오밤중에 난데없는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 않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이 수면과학은 내게 정말 신기하고 자세히 알고 싶었던 분야였다. 이러한 계기로 잠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다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 다음 날에 정신이 몽롱하거나 아주 피곤했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므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데에 잠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또한 잠을 자는 시간이 하루의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잠이 인생에서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맡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잠을 연구하는 과학은 생긴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잠자는 동안에는 뇌가 활동을 멈춘다고 생각했는데, 1950년대에 렘수면이 발견되면서 그 생각이 뒤집혔다. 렘수면은 잠의 다섯 단계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단계에서는 안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뇌는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또한 꿈은 대부분 이 단계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꿈은 무엇일까? 꿈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는 중이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먼저 프로이트는 꿈은 결코 무작위적 사건들이 아니며, 꿈꾸는 사람의 은밀한 기대와 소망이 투영된 의미가 그 속에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매일 밤 우리가 잠을 잘 때마다 마음은 어떤 상징 속에 이런 생각을 감추는데, 그 상징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밝혀내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디멘트가 렘수면을 발견하면서 꿈을 뇌파로 확인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는 캘빈 홀이 사람들이 꾸는 꿈의 내용을 목록으로 만들어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대부분의 꿈은 숨겨진 상징이 가득하기는커녕 놀랍도록 단순하고 예측 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는 프로이트와는 정반대의 견해였다.) 이때 1990년대 전반에 캘빈 홀과 함께 꿈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만들었던 돔호프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꿈에 나타나며, 꿈속에는 그 사람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배경이 넘쳐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가 부정적인 꿈을 꾸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꿈에 대한 학설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충하기도 하며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제 잠의 기능면에서 조금 알아볼까? 수면은 우리의 건강, 대인 관계, 기억, 그리고 창조성에까지 아주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험 전날은 무조건 푹 자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책에 소개되는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2000년대 전반에 독일 북부의 한 연구팀은 잠을 잔 시간에 따른 과제 수행 능력 실험을 했는데, 정상적으로 8시간을 잔 집단이 밤새 잠을 자지 않은 집단보다 17%나 더 빨리 과제를 완수했다. 수면 박탈 상태의 병사들이 잠을 푹 잔 병사들보다 전쟁에서 아군에게 공격을 할 가능성이 더 높고, 주둔지의 민간인들과 언쟁을 벌일 가능성 또한 더 높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소설 트와일라잇의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는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영감이 반짝 떠올랐다고 했다. 이 경우만 보아도 잠은 뇌에 인지적 유연성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창조성을 부여하며, 그 덕분에 우린 상황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능력에까지 차이를 빚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서 조금은 소홀히 여겨왔던 잠자는 것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오늘은 잠을 조금 줄이고 이걸 다 끝내야지.’하는 식의 생각. 잠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줄였다 늘렸다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 이렇게 잠에 대해 가볍게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몸과 마음은 피로하고 짜증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 책 표지에 적혀있는 글귀처럼, 잠이란 말 그대로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면의 양과 질에 따라 행복지수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 그 예로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몸이 찌뿌둥하고 하루 종일 우울하며 정신이 맑은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밤 내내 목구멍이 시도 때도 없이 닫히면서 공기 공급을 차단하여, 몸이 본능적으로 공기를 마시려고 잠에서 깨어 헐떡거리는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중에 판매되는 장비를 달고 잠을 잔다면 조금 나을 수도 있겠지만, 자는 모습이 외관상 보기에 좋지 않고 장비가 걸리적거리거나 불편해서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수면은 죽을 때까지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행위라서 이렇게 수면무호흡증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안타까웠다. 그런데 안타까움을 넘어서 충격적이기까지 한 수면 장애가 있었다. 바로 사건 수면이라 부르는 수면 장애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증상인 몽유병인데, 이 병은 심한 경우 사람이 잠을 자는 동안 자살이나 살인을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 수면 중 무의식 상태에서 아파트 밖으로 뛰어내린다거나 주위에서 같이 자고 있던 사람을 목 졸라 죽이는 등의 사례가 실제로 몇 차례 있었는데,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자살 이유도, 범행 동기도 없이 그저 잠을 자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법정에 따라 유죄가 되기도, 무죄가 되기도 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살인을 했다더라. 나에게 이런 상황이 온다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사실을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 자다가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들의 심정은 또 어떠할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참담하다. 잠을 자는 도중에 자기가 목숨을 끊을까봐 온 몸을 침대에 꽁꽁 묶고 자는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도 얼마나 무서울까 걱정되고 안됐다는 생각뿐이다. 작가는 불면증이라는 수면 장애도 소개하는데 이는 나도 약 두 달간 겪어봤던 것이기 때문에 더 잘 공감할 수 있었다. 챕터의 제목은 불면증의 역설.’ 과연 무슨 뜻을 의미할까 하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잠을 얻으려면 그것을 가지겠다는 강박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불면증으로 잠에 빠지지 못하고 매일 2시간씩 뒤척였던 때, 잠을 너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모순으로 괴로웠었다. 한편,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들은 수면제를 먹곤 하는데, 사실 일반적인 수면제는 수면 시간이나 질을 크게 높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수면제를 복용하는 이유는 수면제가 속임약효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면제를 먹었으니 이제 잠이 잘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버려서 앞으로 난 불면증에 걸리더라도 수면제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책 속에서 꿈에도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밤에 건물들을 환히 밝힐 수 있는 전구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첫 번째 잠두 번째 잠이라는 것을 하루 동안에 나누어 잤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잠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이어진 하나의 긴 덩어리가 아니었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잠은 당연히 하루에 한 번만 자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 사이에 옷을 짜기도 하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니. 오늘날의 삶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들이 여유롭지 못하고 팍팍해진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나의 기분과 능력, 건강, 그 밖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잠이라는 휴식시간. 앞으로는 나를 위해 수면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