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2016.07.10 이기적 유전자


 다윈의 종의 기원을 잇는 진화론서라고 해서 이전부터 무척 읽고 싶었는데, 생물 시간에 유전을 배우며 좀 더 심화된 내용이 궁금해져 두 번째 과정평가 도서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유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진화론보다 그것의 초점으로부터 약간은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는 내용에 빠져버렸다. 모든 챕터가 다 훌륭했지만, 난 특히 '- 새로운 복제자'라는 11장에 주목한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 이외에 또 다른 자기 복제자로서 문화적 진화와 전달을 설명하는 ''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나갈 때 정자와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나갈 때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는 것이다. 사실 밈은 유전자만큼 복제의 정확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 밈의 구성단위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없을 뿐더러 밈 자체가 비입자적인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불확실성에 매력을 느꼈다.

 

 책을 읽기 전엔 전혀 몰랐던 밈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배우며 저자의 이러한 독특하고 천재적인 발상에 감탄했다. 유전자를 뜻하는 ''이라는 단어와 최대한 어감을 비슷하게 맞추려고 ''이라고 용어를 정한 센스 또한 재미있었고, 그것이 유전자와 함께 인간이 사후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불멸의 존재라고 말한 점 때문에 더 파헤치고 싶어졌다. 인간 자체는 유전자든 밈이든 그것이 생존하기 위한 '생존기계'일 뿐이라는 생각도 창의적이었다. 내용 전개에 관해 말하자면, 배려심 없이 자기 할 말만을 하는 일부 다른 책들에 비해 이기적 유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단순히 지식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 모든 존재의 진화 자체에 새로 관심이 생겼고, 앞으로 다른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찾아보며 더 탐구할 예정이다. 생물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와 의지가 생겼다.




2016.07.10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


 ''으로 끝나는 제목이 뭔가 학술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선뜻 읽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이번 과정평가를 계기로 읽게 되었다. 내용은 내 예상처럼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뚜렷하게 안내해주는 것같은 느낌에 눈앞이 훤해지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크게 '사람을 다루는 기본 테크닉, 사람의 호감을 얻는 방법, 상대를 변화시키는 방법,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이라는 5가지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비판하지 말라.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보여라. 상대방의 가슴속에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 경청하라. 웃어라. 이는 모두 저자가 제시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지침들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읽다보니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우호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직접 명령하지 말고 질문을 해야 한다는 등 책을 덮는 순간까지 다양한 방법과 비결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저자가 강조하고자 했던 사실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인정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나쁜 관계가 형성되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타인과 괜찮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쓰는데, 그 모든 노력의 근본은 단순히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할 때 오롯이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이해하고 알아줌으로써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미 생겼던 문제건, 앞으로 발생할 갈등이건 간에 어떤 마찰이든지 다 해결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진심을 다해 인정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16.08.13 연금술사


 몇 페이지 되지도 않고 쉬운 말로 되어있는 이 책을 읽다가 도중에 몇 번이나 덮어버렸었다. 도대체 그놈의 '자아의 신화'라는 것이 뭔지 이해를 못 했던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 반복하니까 짜증이 났었나보다. 하지만 이과를 선택하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성적에 낙담한 후 흥미를 잃고 단지 의무감으로 공부를 하고 있을 즈음에 다시 집어든 연금술사는, 나에게 그야말로 마음의 치료제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산티아고의 여정을 보여주면서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용기를 주엇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심어주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환기하도록 했고, 산티아고가 만난 늙은 왕의 말은 내가 그것을 정말 간절히 바란다면 온 우주가 내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물론 바라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고, 그 열망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줌과 동시에 엄청난 공부 자극제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난 '적당히 열심히' 노력을 했을 뿐, 정말 '최선을 다해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힘들다고, 떨어졌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고 이젠 정말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벌써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다. 수능을 치는 선배들과 바통터치를 해야 하는 날이 겨우 세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루느냐 마느냐는 나한테 달렸으니까. 도망치지 말고 피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슬쩍 나도 끼어보는 거다.




2016.12.11 환상의 빛


 이 책은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전에 저와 가까웠던 멀었던 그 거리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저 죽어버린 사람에 대한 저마다의 추억을 말한다.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장 '환상의 빛'이 가장 가슴 깊이 찡하게 남았다. 주인공인 유미코는 죽어버린 남편과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 고백을 받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죽어버릴 이유가 전혀 없는 어느 날 남편이 자살했다. 유미코로서는 아무런 영문을 알지 못했다. 자살한 이유는 달리는 기차에 뛰어든 남편만이 알 것이었다. 어떤 능동적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니 자신은 재혼을 한 상태였고, 재혼한 남편과 재혼한 남편의 딸아이는 어느새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와중에 유미코는 자살해버린 남편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바다를 따라 걷다가, 죽은 남편의 뒷모습에 말을 걸다가 울어버린다. 환상의 빛 외에도 나머지 세 장이 더 있는데, 제각각 외아들을 잃은 50대 여자, 중학교 때 친구 란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내, 어렸을 적 동무였는데 어떤 사건으로 멀어져버린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 한 회사원의 이야기이다. 세 번째, 네 번째 장은 가족만큼 가까운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열할 만큼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서부터 씁쓸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그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되돌아보게 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직까지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무슨 기분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가끔 누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하고 상상은 해보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죽음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감정이 어떤 쪽으로 작용하든 상관 없이 만약 내가 없어진다면 나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될까. 요즘 '저승사자'가 나오는 드라마가 TV에서 방영되고 있더라. 진짜 저승사자가 있다는 설정이 우스꽝스럽긴 해도 그게 진짜일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사람이 죽으면 혼이 빠져나온다는데. 그럼 그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난 인간이 언제까지고 연구하고 연구할 대상이 하나는 우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이후의 어떤 것은 죽어본 사람만이 알 테니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서 뭐가 어떻더라, 하고 얘기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죽으면 누구나 다 알게될 테니까 난 죽기 전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죽고 싶다. 열심히 살자. 주변 사람들에 깊은 인상이든 뭐든, 뭔가를 남기는 삶을 살자.




2016.12.11 보통날의 물리학


 웹상에서 연재되는 칼럼을 읽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는 물리를 만났다. 표지에 적힌 '일상이 즐거워지는 물리'라는 게 대체 뭐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말 그대로였다. 생활 속에 평소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것만이 물리가 아니다.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부분 주위에도 그것이 존재했다. 여러 챕터 중 '지하 파이프에서 시작된 무선 통신의 역사'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100년여 전 파리는 빠른 우편배달을 위해 지하에 파이프로 연결된 통로를 만들어 로켓처럼 생긴 통에 편지를 넣어 고속으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어찌 지하로 이동통신을 할 생각을 했는지 정말 놀라웠다. 이후 과학자들이 전자기파의 존재를 발견했고 이것을 통신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드디어 무선통신이 개발되었다. 무선통신의 가치는 실로 대단했다. 편리함은 물론이고, 1912년 처녀항해 중이던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했을 때, 무선전신에 의한 구조 요청으로 승객 약 700명이 구조되기도 했다. '여자는 왜 봄이 되면 치마에 홀리는가?'라는 챕터도 기억에 남는다. 겨울과 달리 봄이 되면 밤이 짧아지면서 수면 시간이 줄어들어 신체적으로 피곤해지고 활발한 신진대사로 인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데, 여성의 경우 흥분도가 남성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이 봄을 타는 이유인 것이다. 반면 가을이 되면 남자들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저하되어 여성적인 취향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남성들은 가을을 탈 수밖에 없다. 과학은 언제나 신기하고 놀랍고 시선을 사로잡는 학문이지만, 그 복잡한 내용에 절로 관심을 접게 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기 쉽고 '과학은 까다롭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이런 책들이 좀 더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한다. 아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에까지도 다른 것과 단단히 결합한 물리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즐거웠다.




2016.12.18 살인자의 기억법


 호흡이 문장이 단락이, 그리고 길이가 참 짧은 소설이다. 국수를 먹듯 호로록 읽고 보니 끝 페이지였다. 25년 전까지 살인이 일상이었던 한 노인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차츰 최근 기억부터 잃어간다. 노인은 자신이 죽인 여자에게서 입양한 딸 은희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박주태라는 낌새가 이상한 사람이 나타난다. 노인은 박주태가 자신과 동족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되고 그 살인범으로부터 은희를 지키기 위해 경계를 바짝 세운다. 은희를 지켜야 하는데, 노인은 곧 박주태와 정면으로 마주쳐도 그가 누군지 못 알아볼 만큼 알츠하이머가 심각해진다. 모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기록하고 녹음하며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은희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이 지난 뒤 노인의 집에서 한 여자의 팔이 발견되었다. 은희가 죽은 것일까. 박주태에게? 반전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일어난다. 노인이 딸이라고 믿고 있던 은희는 딸이 아닌 요양보호사였고 박주태는 살인범이 아닌 형사였던 것이다. 딸이라고 믿고 있던 그 은희는 세 살짜리였고 노인이 은희 엄마를 죽일 때 같이 죽었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노인이 혼란스러운 만큼 나도 혼란스러웠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뭔가 이상한 부분을 눈치채기도 했고, 흐름에 균열이 가는 듯한 느낌을 감지하기도 했는데 두 인물을 다 노인이 멋대로 설정한 것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후에 그렇게 갑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던 걸까? ? 정신분열증을 겪는 기분이었다. 활자만 읽고도 이렇게 뭐가 뭔지 모르겠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했다. 한 번 더 읽을 생각이다. 이번엔 노인이 아니라 노인이 관찰하는 다른 사물, 사람들에 집중하면서.




2016.12.18 검은 꽃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기 얼마 전, 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큰 배를 타고 멕시코로 떠났다. 왕가의 친척부터 농민, 무당까지. 신분과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꿈을 갖고 배에 탔을 것이다. 그들은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에 도착하고나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와버렸고, 계약서가 있었고, 그곳에서 개처럼 일을 하는 것밖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소설엔 중심 인물이 정해져있지 않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각자의 고충과 아픔과 삶을 들여다보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읽기만 해도 아픈데 그들은 오죽했을까. 소설이긴 하지만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까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빼앗기려 하는 시점에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들이 멕시코에서 죽기살기로 일하는 와중에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농장에서 조금씩 돈을 벌어 농장주에게 돈을 주고 자유의 몸이 된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한반도로 돌아가지 못하고 멕시코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곳 말을 쓰고 그곳에 적응하면서. 이후에 또 수십 사람이 뭉쳐서 조선의 땅으로 돌아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곳의 내전에 참전했다. 그러다 싹쓸이 죽었다. 너무 가슴 아픈 영혼들이다. 나라가 약해서 일어난 일이다. 고통받은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