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들이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항상 무채색이라고 대답한다.
흰색부터 연회색 진회색을 거쳐 검은색까지.
명암만이 존재하는 차가움이 좋다.
갈색 계열도 좋아한다.
단정하면서도 부드럽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깔끔하다.
이외에 또 몇 개 더 꼽아보라면
국방색과 와인색 정도?
잠깐 딴소리 좀 하면
지금까지 국방색을 카키색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전혀 아니더라.
카키색은 탁한 황갈색이란다.
내가 알고 있던 색은 국방색 혹은 쑥색.
아무튼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어둡다.
이상하게 어두운 계열이 참 좋다.
해리의 말을 빌리자면 죄다 곰팡이색 (...)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색도 있다.
분홍색.
공주같고 샤랄라하고 좀 그렇다.
나랑 안 맞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내 물건을 죽 훑어보면
금세 '니 취향이 뭔지 알겠다, 물건에서 확 드러난다.'고 말한다.
색에서도 나타나지만 모양새에서도 그렇다.
대부분 각 잡히고 딱딱하고 도시적이고 사무적이다.
레이스? 리본? 꽃?
그런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대충 뭐가 어떤지 살짝 말해보자면
늘 차고 다니는 카시오 메탈 시계,
깔끔한 느낌의 국방색 장지갑과 가방,
필통 속 정갈하게 정돈되어있는 샤프들.
문구점에 파는 천 원짜리 샤프 아니고
파일럿 S20 딥레드
스테들러 920 25-03 05
펜텔 그래프 1000 리미티드2 메탈 블랙
펜텔 그래프 1000 리미티드5 라이트 그린
펜텔 스매쉬 블랙
필기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지고 있는 시그노 색도
모두 어두운 계열이다.
다 똑같은 3색 볼펜에 질려
작년에 제트스트림 프라임도 샀다.
본체가 까리한 은색이다.
내 인생 가장 비싼 볼펜.. 정가 4만원.. ㅎ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물질적인 것 말고도
그냥 내 행동 말투 모든 것에
뭔가 나를 드러내는 독특함이 있다.
올해 처음 사귄 친구에게서
'도희는 그냥 그 자체로 도희다.'
라는 얘기도 들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곱씹어보니 마음에 드는 말이다.
취향 확고, 개성 강함.
나는 내 색깔이 확실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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