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김도훈이라는 사람을 몰랐다. 왓챠에서 본인을 평론가라고 지칭하는, 허세 좀 있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편집장이었고 세상 시니컬한 척 하지만 글을 생각보다 맛깔나게 쓰는 사람이었다. 정재승의 추천사에 '조심하시라. 이 책을 읽으면 김도훈을 사랑하게 된다. 영화와 패션과 여행과 고양이를 사랑하는 40대의 힙하고 쿨한 청년을.'이라고 쓰여져있다. 저 문장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공감한다. 김도훈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요즘 말로 쿨하고 힙한 청년? 맞는 것 같다. 취향도 확고하다. 내 스타일이다. 나랑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들도 있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건 그의 재능인 것 같다. 나도 이런 짤막하고 웃기고 뼈 때리는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 멋지게 책 한 권 낼 수 있도록.


[문장 옮기기]

 

 어떤 것은 꿈으로만 남아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어디로 돌아가든 실망스러운 인생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이를테면 '그날 밤의 카레맛' 같은 것이 혀끝에 희미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우리 커피나 한잔할까?" 이 문장은 마법이다. 그리고 그 마법은 어떻게든 통하고야 말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값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우리가 그 모든 아름다운 것을 소유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값을 치르고 내 옷방에 욱여넣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서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진정으로 스타일리시한 것인지를 배운다.

 

 하지만 인간은 꼭 실속으로만 소비를 하는 동물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아주 약간이라도 일상의 허영이 필요하다. 당신 역시 그럴 것이다. 배달 음식을 아라비아 핀란드 접시에 담아 먹는 당신도, 인스턴트커피를 웨지우드의 잔에 따라 먹는 당신도, 유니클로 재킷에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두르는 당신도, 일상의 작은 허상이 주는 자기만족의 기쁨을 알 것이다. 그런 허영은 삶을 보다 부드럽게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작은 허영을 자신에게 허락하라.

 

 반성과 후회는 잠깐이었다. 이내 나는 극세사 천으로 테리 리처드슨의 얼굴을 닦으며 왠지 모를 희열에 휩싸였다. 그건 쓸모없는 것들이 주는 어떤 정신적 고양 덕분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쓸모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에어컨과 티브이와 냉장고와 식기세척기와 자동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쓸모 있는 것들로만 둘러싸인 삶이란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운 것인가. 삶이란 게 원래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과 몇몇 쓸모 있는 것들에 의해 굴러가는, 아주 쓸모없기도 하고 쓸모 있기도 한 것 아니던가?

 

 종전이 선언되고 남북 민간 교류가 가능해지는 날, 나는 니콜라스 케이지 쿠션을 돌려받으러 평양을 방문할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친구와의 농지거리가 정치적으로 공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