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중고등학교 졸업 후 필독서의 강제성에서 벗어났더니 어쩌다 소설만을 편독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비문학을 굉장히 오랜만에 읽었다. 이 책도 남자친구가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랑 연이 없었을 듯! 게다가 물리 책이라니... 대학 물리Ⅰ C+ 받은 사람 나야 나~ 거의 모든 과목을 씨 뿌려 농사지은 1학년 1학기이긴 했다만. 그 중에서도 제일 공부하기 싫었고 실제로도 글자 한 자 읽지 않은 과목이 물리였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술술 읽혔다. 잘 읽히다 못해 재미까지 있었다.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 적어도 고등학교 수준의 이과 과학 상식은 있어야겠지만, 혹여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체로 쓰인 책이었다. 어려운 내용은 실생활의 예로 비유를 너무 잘 들었고, 약간의 위트와 시사점까지 뿌려놓아서 몇몇 문장은 오히려 인문학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알쓸신잡에서 김상욱 교수님의 잡담을 재미있게 듣기도 했고, 그분이 대략 어떤 사람인지를 이미 알고 봐서 그런지 책 읽을 때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책 내용 중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짓궂은 교수님 모먼트도 살짝 비치는데 그게 너무 웃겼고... 물리를 이렇게나 감성적으로, 시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떨림과 울림. 책 제목부터 이미 서정적이지 않은가! 나처럼 물리가 어렵고 힘들었던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덧붙이는 말. 책 읽으면서 내가 멈칫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Na를 나트륨이 아닌 '소듐'으로 읽는 부분이었다. 요즘 애들은 과학 시간에 NaCl을 염화소듐으로 읽는다니... 대충격... 나 벌써 학교에서 배운 용어로 세대 차이 느끼는 나이 된 거야?


[문장 옮기기]

 

 빛은 파동이다. 파동은 진동이 공간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목에 손을 대고 소리를 내보면 그 떨림,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소리도 파동이다. 즉, 빛은 소리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소리는 진동수에 따라 음이 달라지고, 빛은 진동수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아주 느리거나 빨리 진동하는 소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다. 이런 소리를 초음파라고 한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듯이, 보이지 않는 빛이 있다.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138억 년 전, 빛이 처음 생겨난 이후 우주는 팽창을 거듭했다. 빛은 점차 묽어지고 우주를 압도한 건 어둠이다. 어둠은 우주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으며, 어둠이 없는 비좁은 간극으로 가녀린 별빛이 달린다.


 물리학자에게 시간과 공간은 측정으로 얻어진 물리량일 뿐이다. 그러니 시공간의 측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측정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 쉽게 말해서 '자'가 필요하다. "고래는 크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아무 의미 없다. 지구에 비하면 정말 작으니까. 비교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리도 인간이 하는 거라 척도의 기준은 인간이다. 시간의 기준은 초, 길이의 기준은 미터다. 1초는 '똑딱'이라고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고, 1미터는 두 손을 적당히 벌렸을 때의 길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원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100억 분의 1미터 혹은 1옹스트롬이 기준이 된다. 당신의 키 1.7미터는 17,000,000,000옹스트롬이다. 0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터를 쓰고 싶을 거다.


 빅뱅이론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해두어야겠다.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사실이 바로 기독교의 창조론을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 1950년대 기독교계에서는 빅뱅이론이 창조론과 모순되지 않으며, 나아가 그 증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이론이 팽창우주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라는 것을 억지로 집어넣어 우주의 팽창을 막기도 했다. 훗날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했지만 말이다. 사실 스티븐 호킹의 중요한 업적의 하나는 블랙홀과 빅뱅 같은 특이점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에너지의 밀도는 낮아지고 결국 쌍생성을 할 수 있는 에너지 이하가 되면 우주는 오직 빛만 가득하고 물질은 없는 세상이 된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물질이 존재한다. 왜일까?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쌍생성으로 만들어진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질이 반물질보다 10억 분의 1정도 많이 생성되어야 한다. 이보다 너무 크거나 작다면 우리 우주는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 10억 분의 1이라면 서울-부산 거리를 밀리미터 정확도로 측정할 만큼의 미세한 차이다. 아무튼 세상의 물질은 알 수 없는 비대칭에서 생겨났다. 적절한 크기의 삐딱함이 세상을 만든 것이다.


 빅뱅은 천문학적인 관측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엔트로피와 시간의 방향성을 생각해보면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빅뱅이 왜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빅뱅이 없었으면 시간이 미래로 흐를 수 없다.


 흑체복사이론은 막스 플랑크(1918년 노벨물리학상)가 제안한 것이다. 이 이론에는 기묘한 가정이 하나 필요했다. 빛의 에너지가 특정한 값의 정수 배로만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에너지가 돈이라면 빛의 에너지는 반드시 100원, 200원, 300원 등등만 가능하다. 120원이나 145원은 안 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설명하는 손쉬운 방법은 빛이 100원짜리 동전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거다. 빛이 입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빛은 파동이다! 플랑크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차마 빛이 입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빛이 입자라고 처음으로 용감하게 외친 사람은 당시 특허청 말단 직원이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921년 노벨물리학상)이었다.


 살다 보면 남과 다툴 일이 많다. 여기에는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이 깔린 경우가 많다. 지구에서 보는 우주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달에서 본 우주도 옳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 위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른다. 다투기 전, 달에 한번 갔다 오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 동전 던지기는 중력하에서 던져 올린 물체의 운동에 불과하다. 교과서에서는 연직상방운동이라 부른다. 고등학교 물리시험 문제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나? 교과서에서 동전은 크기가 없는 점 하나로 기술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 때문에 학생들이 물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동전이 크기를 가지면 회전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 가야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가 된다.

 '동전의 정확한 초기조건', '강력한 컴퓨터', '물리학과 대학원생'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50%보다 높은 확률로 결과를 맞힐 수 있다. 대학원생에게 결과를 맞혀야 졸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면 예측 확률은 99%에 가까워진다. 그럼 왜 물리학자들은 동전 던지기를 하는 걸까? 그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다. 계산하기 귀찮거나, 초기조건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 계산의 어려움은 귀찮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다만, 원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으로 지우개를 밀면 지우개가 움직인다. 이것은 무슨 힘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손가락으로 지우개를 밀 때, 방사능 걱정할 사람은 없으니 두 종류의 핵력(강한 핵력, 약한 핵력)은 아니다. 내가 지우개를 미는 것은 중력과는 관련 없다. 지구상에서 중력은 낙하를 일으킬 뿐이다. 우주에 힘이 네 개뿐이라고 했으니, 전자기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제5의 힘을 찾은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전자기력 때문이다. 신문 또는 스마트폰에서 출발한 전자기파, 즉 빛이 당신의 눈에 도달한다. 눈의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빛 때문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화학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전기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전자기력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이 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도 뇌 속의 전기적 작용, 즉 전자기력 때문이다. 우리가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이다. 우리 주변 대부분의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전기가 예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하가 있으면 그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장이 펼쳐진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에는 중력장이 펼쳐진다. 전기장을 흔들면 전자기파가 생기듯, 중력장을 흔들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부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열이 원자들의 운동이라면 낙하하는 돌멩이는 뜨거워지는 걸까? 그렇다면 KTX에 탄 사람도 뜨거워져야 한다. 그 사람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으니까. 물론, 경험적으로 볼 때 이건 말도 안 된다.

 뜨거운 물체의 경우 그 물체를 이루는 원자들이 더 격렬하게 운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도에 기여하는 운동은 '무작위적인' 운동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봉을 조사하여 분포를 구하면 평균과 표준편차를 알 수 있다. 표준편차는 분포의 폭과 관련된다. 이것은 자료가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즉 얼마나 무작위한지를 나타낸다. 다시 KTX에 탄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의 속도는 빨라진다. 이것은 원자 속도분포의 평균값이 커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평균이 아니라 표준편차다. 평균이 크다고 표준편차도 큰 것은 아니다.

 혹자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물질적 풍요는 분명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하지만 부를 분배하는 것, 즉 분포의 표준편차를 줄이는 것은 또 다른 이슈다. 온도는 표준편차가 결정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의 평균을 높이더라도 표준편차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는 뜨거워진다는 말이다.


 마찰이 있다면 물체는 결국 멈춘다. 당겨진 종아리 살이 진동하지 않고 바로 서는 것은 마찰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심에 이르고자 하지만 항상 지나쳐 다른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단번에 원하는 중심에 도달하기는 힘들다. 결국 진동이 잦아들며 조금씩 목표에 접근해가는 거다.


 주기의 역수를 '진동수'라 하고, 단위로 헤르츠(Hz)를 쓴다. 컴퓨터 프로세서 펜티엄 칩의 진동수가 2.3기가헤르츠(GHz)라는 것은 1초에 23억 번의 단진동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컴퓨터 내부의 전기신호도 단진동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단진동은 주기가 365일, 진동수로는 3,000만 분의 1헤르츠 정도 된다. 진동수는 중요하다. 용수철마다 자신의 고유한 진동수를 갖기 때문이다. 단진동의 세계에서 진동수는 주민등록번호다.


 대학 수학의 대부분은 단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삼각함수,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 푸리어급수 등이 그 예다. 진자 하나를 당겼다 놓으면 단진동한다. 하지만 진자 두 개를 연결하여 흔들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당겼다 놓으면 역시 단진동한다. 하지만 높이 당겼다 놓으면? 교과서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거기에는 카오스라는 고통이 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물체는 정지에 가까운 작은 진동을 할 때에만 단진동한다. 진폭이 커지면 대개 카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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