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Hand DEEZ

 

 

 우선 나는 고유정 사건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이 책을 읽었고, 그 사건을 배제하고 봤을 때 몰입감이 대단했던 신작이다. 500쪽이 넘는 장편 소설임에도 정유정 작가님의 힘있는 이야기 전개력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갔다. 그녀의 디테일한 배경 설정 능력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라고, 정유정식 스릴러의 기저에 깔린 섬찟한 분위기도 여전했다.

 

 다만 내가 아쉬웠던 점은 전작들에서 느꼈던 뒤통수 짜릿한 충격이나 반전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들었던 '짐작'이란 게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짐작이 확신으로 바뀌었고, 이야기는 예상한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진부함을 느꼈달까.

 

 악인에게 시점을 넘겨주지 않고 주변 인물의 입장에서만 사건의 정황을 설명해서 약간의 답답함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주인공의 범행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건을 짜맞추는 재미가 생기겠지만, 직접적으로 묘사해줘도 이해하기 힘든 범인의 심리가 더 오리무중으로 빠지기 때문에 독자로서 참을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냥 저 사이코패스나 빨리 좀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고유정 사건과 이야기가 닮아있다'는 문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비슷하기에 대작가님께서 이토록 혹평을 받으실까 궁금해서 고유정 사건 나무위키를 정독해봤다. 내가 판단하기에 사건의 틀은 굉장히 유사했다. 누가 누구를 살해했느냐가 원사건과 일치했고, 입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범행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이 그 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이것 외엔 모든 설정이 허구적 요소로 채워진 잘 다듬은 스릴러 소설이라는 의견에 나는 힘을 싣고 싶다.

 

 처음엔 민서기라는 낯선 단어를 접하면서 믹서기도 아니고 민서기가 대체 뭐야 싶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당분간 소세지만 쳐다봐도 역겨운 생각이 떠오를 것 같다.


[문장 옮기기]

 

 어젯밤 잠들기 전, 아빠는 지유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아빠, 오늘 안 가. 아래층에서 잘 거야."

 아빠는 졸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일찍 일어나서 반달늪에 가자."

 지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들떠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금세 잠든 모양이었다. 꿈에서 되강오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다락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다락방으로 가보니 아래층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보니 욕실 같았다. 욕실로 달려가 문을 열자, 발밑이 푹 꺼져버렸다. 지유의 몸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내렸다.

 다리를 쭉 뻗지르면서, 지유는 눈을 떴다. 창밖에서 보름달이 눈을 마주쳐왔다. 반달늪 너머로 가라앉던 저녁해처럼 크고 붉은 달이었다.

 "괜찮아. 꿈이야. 아침에 잠을 깨면 다 사라져버릴 꿈."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다시 눈을 감고 자는 거야."

 지유는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려면 먼저 잠을 자야 하니까.

 지유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날이 밝고 있었다. 파름한 새벽빛 속에 고기 비린내가 떠돌았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냄새였다. 엄마가 오리 먹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아빠에게도 오리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젯밤 엄마는 아빠와 화해를 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지유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이불 정리도 하지 않고, 내복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둘 다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그 점을 깜박할 만큼 마음이 조급했다. 어젯밤 꿈이 다 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바이칼 호수로 출발한 건 이튿날 아침이었다. 호텔 직원에 따르면 아주 가깝다고 했다. 그는 몰랐다. 러시아의 '가깝다'와 한국의 '가깝다' 사이엔 우주 하나가 존재한다는 걸.


 어머니는 4절 완창을 하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도돌이표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잠자코 들었다. 그만하라 해봐야 어머니는 그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겪어온 일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정신 사납게 말을 붙이고, 문제가 생기면 거친 운전을 탓하고, 그만하라고 하면 과거 일을 낱낱이 소환해 차에서 내릴 때까지 쏘아붙였다. 그땐 운전자가 아버지였고 어머니가 조수석에 있었다는 게 다를 뿐.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 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아내는 그의 거절을 거절했다.


 안다는 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중 어떤 유의 '앎'은 '감당'과 동의어였다. 최 상사에게 묻게 될 이야기가 바로 거기에 해당되리라고, 앎을 전문으로 취급해온 13년 차 기자의 촉이 단언하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바꿨다. 제자리에 돌려놓을 요량으로 아내의 휴대전화는 바지 주머니에 담았다. 순간 문이 열리는 듯한 희미한 기척을 느꼈다. 그는 퍼뜩 눈을 들었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질러버릴 뻔했다. 아내가 문간에 서 있었다. 문을 반쯤 열고, 고개만 안으로 들이민 채로.

 "여기서 뭐 해?"


 "지유 이제 꿈 안 꾸니?"

 "네. 아빠 인형이 지켜줘요."

 지유에게 아빠 인형은 침대 틈새에 처박아버릴 물건이 아니었다. 원주인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겼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인형은 엄마 몰래 가져온 것일 테다.

 유나는 자기 물건을 타인에게 주지 않는다. 빌려주지도 않는다. 만지는 것조차 싫어한다. 그나마 제 딸에겐 조금 다른가 보다 했다. 착각이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그녀는 인형을 다시 틈새에 꽂아넣었다. 언제든 지유가 돌아오면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유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와 '저리 가'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 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 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처신하면 왜 자신에게 거리를 두느냐고 화를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기어코 극단까지 갔다. 자해를 하거나 가해를 하거나.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유나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평범하지 않은 물건은 하단 수납장에 있었다. 첫 번째 칸에 든 것은 통나무 도마와 거치대에 걸린 네 개의 칼이었다. 길고 얇은 칼, 짧은 칼, 회칼, 손도끼처럼 생긴 칼. 다음 칸을 열자 민서기와 대형 믹서가 나타났다. 그다음 칸엔 들어앉아 목욕도 할 수 있겠다 싶은 대형 찜통 두 개.

 찜통만 공기에 밴 사골 냄새와 부합하는 물건이었다. 나머지는 가정집이라는 장소에는 부적절한 물건들이었다. 부적절한 물건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게 여기에 왜 놓여 있을까,라는 질문을 부른다. 할아버지의 기일이면 불려와 부엌일을 도운 자로서 단언컨대, 할머니의 살림살이도 아니었다. 소나 돼지, 닭이나 오리 같은 남의 살을 다루는 자의 도구였다.

 유나는 저 도구로 뭘 했을까. 다른 것을 상상하기엔 도구들의 목적이 지나치게 명확했다. 칼은 해체, 찜기는 삶기, 민서기와 믹서기는 갈기. 해체와 삶기과 갈기는 같은 맥락 안에 위치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외풍 같은 한기가 그녀의 뒷덜미를 베고 갔다. 어떤 상상이 머릿속에서 번뜩 불을 켰다. 그녀는 수납장 문을 후려치듯 닫았다. 막 열리기 시작한 상상의 문도 닫아버렸다. 후다닥, 몸을 일으키고 거실로 도망갔다.


 중학 시절, 담임이 '직각의 순간'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어떤 세계를 하나의 그림으로 이해해내는 섬광 같은 순간이라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무의식의 막이 한 손에 찢겨나갔다. '설마'라는 저항의 벽이 한 방에 부서졌다. 갇혀 있던 상상이 급류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런 걸 상상할 수 있는 자신의 머리통이, 정말이지 끔찍스러웠다.


 

 "내 딸 만지지 말라고, 개자식아."

 만지지 말라……. 말의 뉘앙스가 교묘하게 악의적이었다. 더하여 그에게 주먹질을 퍼부으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가 알기로 이런 경우에 적절한 말은 '끼어들지 말라'일 것이다. 보통은 그렇게 한다. 어린 딸에게 저 남자가 너를 추행하고 있다고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오싹한 직감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아내의 전남편도 이혼소송에서 이런 식으로 내몰린 게 아닐까. 그로 인해 양육권을 빼앗기게 된 것은 아닐까.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지."

 아내는 뒷걸음질로 주방 개수대까지 물러선 뒤, 사진용 포즈를 주문해왔다.

 "자기, 지유와 머리 맞대고 다정하게 치즈."

 지유가 곁눈으로 그를 봤다. 그는 지유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머리를 맞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치즈'가 되질 않았다. 입가에 경련이 일고 등허리 밑에선 한기가 퍼졌다. 마침내 자신도 신유나가 모는 죽음의 열차에 올라탄 모양이었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오늘 밤에 잠든 적 있어? 꿈은 잠을 자야 꾸는 거 아냐?

 요망한 생쥐가 물어왔다. 지유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게 아닌지. 가끔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자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때가 있으니까.


 "눈 떠, 아가. 눈 떠봐."

 지유는 꿈속에 들려오던 이모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또 나쁜 꿈을 꾸면 힘껏 이모를 불러."

 약속대로 이모는 늘 곁에 있었다. 아가,라 불러 꿈을 깨워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울지 말라고 안아주고, 아빠 인형을 가지고 청연으로 달려와주었다. 이모가 애타게 부르는 지금, 자신은 벽 너머에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이모가 부르잖아.

 요망한 생쥐가 말했다. 지유는 숨을 들이마셨다. 손을 뻗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놔. 도둑년아."

 헤드랜턴 아래로 드러난 유나의 눈이 동굴처럼 어두웠다. 그녀는 유나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제 삶을 끝없이 훔쳐왔다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바뀌지 않을 신념 같은 것이었다. 바로 그 힘으로 살아왔을 테니까.


 "자기, 나랑 왜 결혼했어?"

 왜 했을까. 그때의 그는 신유나의 행성이었다. 매일 매 순간 그녀를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길 교차로 신호에 걸렸을 때, 수업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를 때, 퇴근 후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를 때, 그녀를 생각했다. 거실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며 깔깔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생각했다.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녀가 얼마나 눈부셨는지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들 때까지 온전히 그녀를 생각했다. 그런 여자와 결혼 말고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선택의 대가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아직도 자신이 아들을 죽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의심으로 잠 못 드는 밤마다 아내가 가르쳐준 죽음의 묘약 '쉐바'를 먹는다. 약에 취해 잠들면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아내는 그를 죽이러 온다. 아내가 오면 그는 묻는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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